2012년 10월 23일 화요일

씨 Seed

한 알 한 알의 씨을 손바닥에 올리고 볼 때마다 참으로 신통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 쬐끄만 알갱이마다 자체의 삶을 담고 있어 각자의 성격과 능력이 모두 다르다는 점과 알갱이들이 앞으로 흙과 함께 펼쳐낼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것 같아서이다.

씨에 물이 닿으면 내부에서 싹 틔울 준비가 시작되고 씨를 보호하던 껍질이 터지면서 뿌리가 먼저 나와 흙의 영양과 수분을 흡수하기 시작하면서 한 쌍의 자그만한 떡잎을 먼저 키워낸다.  떡잎이 광합성을 통해 영양분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본잎을 만들어 내 보내는데 떡잎은 모양들이 거의 비슷해서 식물의 종류를 가늠할 수 없지만 본 잎을 보면 누가 누구인지 구분할 수 있다.  책에서 보니 떡잎 만들기까지는 씨 자체에 미리 저장되어 있는 영양분을 사용하고 본 잎부터는 자체적으로 만드는 영양에 의존한다고 한다.  씨에 물이 닿으면서부터 내장된 유전 프로그램에 따라 삶이 내부에서 시작됨과 동시에 외부에서는 곰팡이와 박테이아의 공격들이 시작된다.  그래서 흙이 너무 축축하면 Damping off라고 해서 결국 여리디 여린 싹이 조금 올라오다가 곰팡이에게 죽임을 당하기도 하고  수분이 너무 없으면 말라 죽고 씨에 저장된 에너지로 떡잎까지 힘들게 올렸는데 달팽이가 싹뚝 잘라먹으면 본잎은 꿈도 못 꾸고 삶을 마감해야 하는 모습을 흔히 본다.  그래서 한 쌍의 본 잎이 성공적으로 올라와 자기의 identity를 확실히 보여줄 때가 되어야 비로소 큰 고비는 넘겼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런데 각 씨들의 능력이 모두 다르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건강한 놈들은 어지간한 외부의 공격들을 이겨내고 힘차게, 빠른 시간내에 본잎을 올리고 앞으로의 성장 과정도 왕성한 반면 약한 씨들은 싹 트는데도 오래 걸리고 올라오는 싹도 약할 뿐더러 앞으로의 성장 과정도 왕성하지 못할 것이다.
 
언듯 씨를 보면 생명체 같지 않지만 씨도 살아 있어서 숨도 쉬고 먹을 양분도 필요로 한다.  그렇지만 씨가 갖고 있는 양분에는 한계가 있어서 갖고 있는 영양분이 동이 나면 더 이상 생명력을 유지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일정 기한이 지나면 싹을 틔우지 못하는 것이다.  생명력을 보다 오래 갖고 있을려면 온도가 적당히 낮고 수분도 적은 환경에 보관하는 것이 좋다며 전문가들은 습기를 빨아들이는 가루와 함께 잘 밀봉해서 냉장고에 보관하기를 권하던데 나는 씨를 수확할 때 아주 잘 영글도록 두었다가 냉동실에 보관하니 오랫동안 좋은 발아율을 유지해서 모든 씨들을 냉동실에 보관하고 있다. 

열매 맺는 채소의 씨는 주로 열매 속에, 잎을 먹는 야채들은 꽃대가 올라와 꽃을 피운 뒤 꽃이 달렸던 곳에 씨가 맺히는데 씨를 받을려면 영글도록 두어야 한다.  그래서 씨 받을 열매는 가지에 달린 채 완전히 익은 후 색이 변하고 열매가 어느 정도 늙도록 둬야 하고 꽃에  맺히는 씨들은 꽃이 피었다가 말라 떨어지고 난 후에 씨가 맺히며 다 영글면 씨를 싸고 있는 껍질들이 말라 밤색으로 변하면서 까슬까슬해짐으로 알 수 있다.

시애틀의 여름이 짧아 나는 열매 맺는 여름 야채는 씨를 심어 키워내기 보다는 서리의 위험이 없을 쯤 온실에서 잘 길러 나온 모종을 사기 때문에 열매의 씨는 거의 받지 않는 반면 잎이나 뿌리 야채의 씨는 한 포기만 남겼다가 씨를 꼭 받아본다.  대신 씨 받을 야채는 F1(개량종)이 아니고 OP(Open Pollinated; 자연 수정)임을 확인하고 씨나 모종을 산다.    F1의 많은 장점들이 한 세대만 유효한 탓에 씨를 받아 다시 뿌리면 씨가 아예 싹이 안 트는 씨일 수 있고 또는 그 부모 만큼 잘 자라지 못할 수도 있고 또는 어떤 성격을 가진 씨가 될 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야채에 따라서는 OP를 아예 살 수 없는 것들도 있다.

요즘 주변에 heirloom(에얼룸)이라는 단어가 종종 보인다.  여름에 식품점에 가면 아름다운 heirloom 토마토가 특히 눈길을 끄는데 우리 눈에 익숙한 일반 토마토들과 모양과 색깔, 질감, 그리고 맛이 다르다.  농업이 기계화, 대량 생산화되면서 1970년대부터는 농업 환경에 맞는 개량종의 개발이 활발해지고 이렇게 키워 진 농산물들이 시장을 점유하다가 최근 들어 그 이전에 존재하던 농산물들에 대한 호기심이 다시 생기면서 개량(잡종화)되지 않은 씨들을 다시 찾고 보존해 나갈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현재 Heirloom이라는 단어의 정의에 대한 논란이 많지만 우리는 두가지만 기억하면 될 것 같다.  Heirloom이라는 단어가 앞에 붙은 씨나 식물들은 첫째, 농업이 근대화 되기 전부터 존재했던 식물들이고 둘째, 여러 세대에 걸쳐 OP로만 수정되어왔기 때문에 옛날 조상들이 수확했던 식물들과 같은 성격을 고스란히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heirloom 씨나 모종을 키워 내가 씨를 받으면 이 또한 그 부모의 성격을 고스란히 갖고 있는 씨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가정의 채소 밭에서는 OP로 자란 식물을 키워도 종종 본의 아니게 잡종이 되기도 하는데 가까운 거리에 다른 종류의 꽃들이 비슷한 시기에 피어 있다보면 생길 수 밖에 없는 현상이다.   식물에 따라 다른 종류와의 수정이 허락되는 것도 있고 허락되지 않는 식물들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집에서 받은 씨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기 전에 일단 내가 한번 키워 확인을 해 본다.    지금까지의 경험에 의하면 내가 받은 씨는 이미 우리 집 흙과 기후와 환경에 적응이 되어서인지 싹도 더 잘 나고, 잘 크고, 맛 있어서 해마다 야채를 뽑고 정리할 때 제일 잘 자란 놈으로 적어도 하나는 남겨서 꽃도 즐기고 씨도 받는다. 야채 꽃들이 밭 주변에 있으면 호박벌을 비롯해 다양한 크기의 곤충들이 드나들기 때문에 여름 야채들의 수정에도 도움이 된다.

씨들을 받아보니 채소 한그루에서 엄청난 양의 씨가 나온다.  그만큼 씨를 사지 않아도 되니 너무나도 경제적이다.  거기다 말린 가지에서 걷을 만한 씨들을 수확하고 남은 대들은 다시 밭에 가져 가 흙 위에 뿌려두면 늦게 영글은 씨들이 여기 저기 올라오기 때문에 뿌리지도 않고 거저 거두어 들인다.  자연은 참으로 넉넉하게 돌려준다.  내가 조금만 수고하면.

지금까지 씨 받은 경험이 없다면 꼭 한번 해 보시길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다.  풍성히 얻게 되는 씨도 씨지만 식물의 전체 life cycle을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씨를 어떻게 받는 지 잘 모르겠거든 그냥 늙도록 둬 보시라.  꽃이 져도 그냥 두었다 한참 후에 꽃이 맺혔던 부분을 보시라. 새로 마련된 새 생명들이 오물조물 그 속에서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다 오지 않으면 알아서 흙 위에 흩어 뿌리리라.

sugar snap pea

Scarlet Emperor runner bean

Collard green

dill

상추 씨 mix

영글고 있는 collard green

영글고 있는 상추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