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8일 월요일

Wood Stove를 이용해서 Charcoal 만들기

얼마나 오랫동안 가슴에 품어 온 염원이었던가!!!

숯을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처음 시작된 지는 20년도 넘었으리라. 20년 전 친구 따라 필리핀을 6주간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림자처럼 딱 붙어서 가는 곳마다 떨어지지 않고 지내다 보니 많은 일상을 볼 수 있었다.  그 중 인상적이었던 것이 대나무를 이용해서 일상의 연료로 사용할 숯을 만든다는 것이었다.  부탁해서 만드는 곳을 가 보니 작은 언덕처럼 쌓아 놓은 나무 더미만 보였는데 식히는 중이라고 했던 것 같다.   다음 날 어머니께서 대나무 숯으로 요리하는 모습도 보였다.  대나무 숯을 처음 보았다.  그 때에도 이미 숯에 끌리고 있었던 걸 보면 그 전부터 이미 시작 되었으리라.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 내가 경험해 보지 않았으니 나에겐 늘 궁금했던 대상이었다.

가을이 되고 시애틀에 비가 자주 내리기 시작하면 아침 저녁으로 장작불을 지피는데 내 무의식에서는 타는 나무들을 볼 때마다 숯 만드는 방법을 늘 모색하고 있었던 것 같다.  숯 만드는 다른 이들의 동영상들을 보면 너무 거창해서 도시 속에서는 가능하지 않고 또한 긴 시간 엄청난 화력으로 나무들을 태워야 하는데 그 화력의 낭비가 아까웠다.  숯의 양이 많든 적든 긴 시간의 큰 화력은 기본이니까.   

그래서 만드는 것은 형편상 포기하고 어느 숯을 살까 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지난 주 어느 날 아침에 타는 장작을 보고 있는데 문득 stove top smoker이 머리에 떠 올랐다.  통에 생나무를 가득 채워 뚜껑을 닫은 후 난로 한 켠에 세워두면 될 것 같았다.  산소를 그 정도만 차단해도 뭔가 일이 될 것 같아 온라인으로 나와 있는 제품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다양한 크기들을 갖고 고심하다가 결국 새 것을 산다는 것이 마음에 내키지 않았고 내가 이미 갖고 있는 것을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빵 굽는데 사용하는 모든 용기들을 살피다가 문득 이제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무쇠 냄비가 생각났다.  중고를 살 때부터 안 쪽에 조그맣게 쇠가 드러난 부분이 있었는데 빵 굽기에는 지장이 없어 구입했고 잘 사용했었는데 더 나은 용기들을 그 다음에 갖게 되어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냄비이다.  중고 가게에 갖다 줄려니 보기만 해도 정겨운 아이라 선뜻 포기하지 못했었다.  

난로 한 쪽에 놓으니 평소의 양으로 불 피우는데 지장이 없을 정도로 적당히 작았다.  나무를 잘라 냄비를 채우고 저녁 불 때기를 시작했는데 몇 시간 후에 보니 냄비 뚜껑 아래로 불꽃들이 마구 피어 나왔다.  이건 무엇인가? 신기했다.  불꽃이 냄비 속에 들어가지 않았는데 여건이 되니 자체적으로 불이 시작되었다는 것이....    심상치 않은 불꽃들이 5분정도 계속 나오더니 멈추고 잠잠해졌다.   

평소처럼 늦은 밤까지 불 때기를 마치고 아침에 미지근하게 식은 뚜껑을 살며시 열었다.  숯이 아름답다는 걸 처음 느낀 순간이었다.  크기는 줄었지만 나무 자체의 결과 모양, 껍질의 거친 디테일들까지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고 까만 색이 빛을 반사하며 반짝반짝 광이 났다.  그으름 내는 무언가가 고스란히 빠져 나가고 열 내는 데 필요한 에센스(essence)만 남았다.  나무 마다 태워 없어진 부분도, 남은 모습도 다 달랐다.  컴포스트가 black gold라고들 하는데 여기 또 있구나. 

남편이 설명해 주었다.  gas가 탄 것이라고. 그래서 단어를 몇개 이해하게 되었다.  Gasification, gasified, gasifier....   그러고 보니 생각 났다.  survivor stove들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회사인 Silverfire의 제품들 중 hunter stove의 제품 설명에 gasifier 이라는 단어가 있었는데....

숯의 아름다움과 너무나도 쉬운 공정에 감동한 체 매일 냄비를 채우고 숯을 모으며 며칠 보내고 있으니 남편이 테스트를 해 보자고 한다.  그래서 어제는 비가 많이 내림에도 불구하고 비 가림 아래에서 히바치 그릴을 사용해 보았다.  불고기와 버섯, 호박, 고구마등을 구우며 숯의 크기와 종류에 따른 다른 화력들, 그리고 계속 숯을 추가하는 좋은 방법도 모색했다.  어제 경험의 결과는 홈메이드 숯이 할 일을 아주 제대로 했다는 것이다.  특히 시중에서 구입하는 lump charcoal에는 부스러진 작은 조각들이 많은 데 비해 홈메이드는 덩어리 하나하나를 소중히 다룸으로 부서진 알갱이들이 거의 없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생활 속에서 사용해서 없어지는 소모품을 내가 자체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 그만큼의  자유로움을 더해준다.  







2024년 11월 1일 금요일

Zoodoo: 동물원에서 만드는 똥거름

오랫동안 얘기를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구입한 경험은 없었다. 올 봄에 문득 생각이 나서 동물원 싸이트에 들어가보니 구입하는 날이 다가오는 주말이었다.  

시애틀의 Woodland Park Zoo 동물원에서 동물들의 배변을 모아 흙에 사용할 수 있는 거름을 만들어 봄, 가을에 두번 판매를 하고 있는데 미리 예약하고 크레딧 카드로 지불한 후 예약된 시간에 가서 내가 직접 퍼 담아 온다.

구입 양은 5갤런부터 트럭싸이즈까지 선택할 수 있고 올해 가격은 5갤런 바케스 5개 분량인 25갤런에 $16.50 였다.  

거름의 냄새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참고로 이런 거름은 열매를 수확하는 여름 야채들이나 가을 무, 배추등에 도움이 된다.

동물원 Zoodoo 페이지

메도우데일의 Sunset



 

오랜만에 컴퓨터를 열자니 걱정이 앞섰다.  빠르게 변해가는 디지털 세상에서 아나로그의 마인드를 갖고 살다보니 빠른 변화에 맞추기 보다는 내려 놓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해서 오랫동안 이메일도 컴퓨터도 외면한 체 살아 왔는데 나누고 싶은 사진들이 몇장 생겼다.  오늘 컴퓨터가 부팅이나 제대로 할까? 인터넷 연결은 가능할까? 늙은 랲탑이 아직 제 구실을 할 수 있을까?  인생 후반기를 살고 있는 나 자신과 오버렙 되면서 마냥 덮어두기 보다는 깨워서 가능성을 확인하기로 했다. 어차피 한번은 해야 할 일인데도 작은 두려움과 염려들이 랲탑 열기를 주저하게 만들었고 딱히 꼭 열어야 할 이유가 없었던 점도 있다.   그러나 그 날 저녁의 감동을 글로 남길 수 있도록 깊은 잠에서 깨어나 이만큼의 작업을 가능하게 해 준 늙은 컴퓨터에게 먼저 감사함을 전하고 스토리 텔링을 시작할까 한다.

내가 자주 걷는 메도우데일 공원은 카운트 공원인데 200 에이커의 울창한 숲이 서쪽으로는 바닷가를 끼고 있다.  차를 주차하고 1마일 남짓 걸어 내려가야 하기 때문에 어떤 이들에게는 불편하게 여겨질 이 점 때문에 그나마 더 복잡해지지 않는 데 도움이 되지 않나 여겨진다.  

나는 주로 늦은 오후에 가는데 집에서 이것 저것 하다보면 늘 막차 타는 느낌으로 어둠이 내리기 시작할 무렵에야 달려가곤 한다.  그 날은 평소보다 더 늦어 올라 오는 사람들이 거의 없고 중간에서 데니스 아저씨를 만났다.  공원에서 가끔씩 만나 얘길 나누다가 집으로 차 마시러 오라고 초대해 주셔서 방문한 계기로 이젠 친구가 된 아저씨이다.  아저씨는 노약자들이 사용하는 찻길을 따라 공원 뒷쪽에서 내려와 나와 반대로 걸으시기 때문에 주차장으로 돌아올 때에는 깜깜한 숲길을 나 혼자 걸어야 한다는 생각에 바닷가에 누군가 한 분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갖고 아저씨와 함께 바닷가로 내려 갔다.  

철도 다리를 지나 마주한 넓은 하늘에는 지는 해를 뒤로 품고 펼쳐진 구름들이 용광로의 빛을 내고 있었다.   주변으로 늘어진 구름들도 다양한 오렌지 빛을 발하는데 그런 환상적인 분위기는 처음이었다.  바닷가에는 우리 외에는 아무도 없어 나와 데니스 아저씨만 우와 우와를 연발하며 보고 있었는데 보는 동안 색깔들이 계속 변해 갔다.  자연을 사진으로 찍을 때 마다 기술이 부족해서인지 아름다움을 다 담지 못하는 실망감을 많이 경험했기에 선뜻 사진 찍을 생각을 못하고 주저하고 있는데 갑자기 젊은 목소리들이 바닷가로 우루루 몰려 나왔다.   근처 중학교의 운동팀으로 보이는 10명 남짓의 아이들이 코우치 인솔하에 밤바다에 수영하러 온 것이다.  이곳 저곳으로 뛰어다니는 젊은이들의 목소리와 실루엣으로 생기가 더해지니 내 심장도 덩달아 빨리 뛰기 시작했고 이런 조합을 가슴에만 묻을 수 없다는 생각에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적막하고 어두운 밤의 시원한 바람과 갯내음, 거기에 더해진 아이들의 즐거운 소리들을 모두 담을 순 없었지만 눈으로 보이는 모습의 일부만이라도 담았다.  사진에 담긴 모습을 확대해서 내 시야 전체를 채우는 밤 바닷가에 서 있다고 상상해 보시라.

레인져 숙소에서 아저씨와 헤어지고 깜깜한 숲길을 혼자 걷는 내내 감동으로 꽉 찼던 가슴에 두려움이 들어올 자리가 없었다.  그래도 고맙기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걷는 동안 여기 저기서 들리고 내가 주차장으로 다 왔을 때 그 아이들도 떠났다는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날 저녁의 감동을 온몸으로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