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19일 수요일

패턴으로 내 옷 만들기/정보




소박한 삶이라는 주제를 두고 첫 글을 대하니 언제부터 이 단어가 내 생활의 일부가 되었는지 지나 온 미국 생활을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한국에서 올 때가 남편의 여름 방학 중이라 LA근처 사시는 시어머니(미국분) 집에서 여름 한 달을 보내게 되었다.

미국에 온 지 하루 이틀이 지나고 며칠이 되니 가정 수영장 청소를 아르바이트로 일하던 남편이 일을 가면 나는 할 일이 없었다. 지루한 참에 며칠 동안은 남편따라 그의 보스와 함께 집구경도 할 겸 일을 함께 갔었다. 그 덕에 영화에서나 보는 화려한 집 구경을 넉넉히 했다. 그 중 한 집은 산 꼭대기를 깎아 집을 지어 360도의 경치를 볼 수 있었는데 우리가 간 날은 파티 준비하느라 시중드는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래서 물론 수영장 청소도 필요했겠지만. 그 집에서 롤스로이스 차도 처음 보았다. 길 목에 그냥 내버려진 듯이 주차해 놓았던....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시어머니가 날 보기가 안타까왔는지 하루는 나에게 재봉틀을 하라 사라고 하신다. 그러면 패턴을 사다가 옷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시겠다면서. 나도 뭔가 일거리를 갖고 있는 걸 좋아해서 대뜸 동의하고 손위 동서와 singer 재봉틀을 $199.99에 샀다. 요즘이야 한국에서도 시각적 효과를 얻기위해 같은 스타일의 가격들을 사용하지만 .99라는 가격 시스템을 처음 대면했던 날이었다. 시어머니는 나를 Fabric Land라는 가게로 데리고 가서 먼저 두툼한 패턴 북을 보고 마음에 드는 옷을 고르게 했다. 가게 중간쯤 찾아보면 두꺼운 책들이 테이블에 많이 늘어져 있는 곳이 있다. Vogue외 여러 회사에서 각 계절마다 새 패턴북을 내 놓기 때문에 새 책들이 나오면 그 전 책들을 $1-$2에 팔기도 한다. 나도 그런 책들을 사다가 집에서 여유있게 뒤져보기도 했었다. 그런 다음에는 패턴 번호를 보고 테이블 옆에 있는 서랍장에서 봉투에 든 패턴을 찾는다. 대개는 한 패턴에 여러 싸이즈가 그려져 있는데 내 체격에 맞는 패턴을 따라 가위로 잘라내면 된다. 자를 때 주의할 점은 삼각형이나 두 삼각형을 줄로 연결한 여러가지 부호들을 패턴의 일부로 남겨두면서 잘라야한다. 패턴 사용법이 단계별로 바느질 하는 법과 함께 한 장의 큰 종이에 그림과 함께 아주 잘 설명되어 있다. 천의 방향과 패턴의 위치는 설명서를 보면서 따라하면 된다. 그리고 패턴 봉투를 보면 추천하는 섬유 종류들도 나와 있고 옷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단추 싸이즈등등의 부재료들도 아주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난 그 때 하와이언 스타일의 여름 남방을 면으로 이틀 걸려서 만들었는데 시어머님께 칭찬을 많이 들었다. 말을 잘 못하지만 머리로 생각하는데는 이상이 없다는 것을 보여드리게 되어 뿌듯했다. 다행히 만든 옷이 내 몸에 잘 맞아 그 해 여름동안 잘 입었다. 셔츠 다음에 또 다른 프로젝트가 필요했을 쯤 남편과 함께 일하는 보스가 윈드서핑하는 보트의 찢어진 닻을 가져와 새 나일론 천을 사다가 똑같이 만들어 달라는 부탁이 들어왔다. 초보자에게는 엄청 부담스러운 일이긴 했지만 일단 해보기로 하고 나름대로 천을 골라 쉬이 미끄러지는 나일론천과 한참 씨름한 후에 겨우 완성을 하긴했다. 그때 수공이 많이 들었다면서 $250정도를 주셨는데 이제 생각해 보면 그 분이 가난한 우리 부부를 도와줄려고 그런 일거리를 찾아오지 않았나 싶다. 미국인들은 누군가를 도울 때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지 않을려고 노력할 뿐 아니라 받는 처지가 부끄럽지 않도록 신중한 배려를 한다는 것을 그동안 살면서 종종 확인했다.

패턴과 옷감들을 살 수 있는 곳으로는 JoAnn Fabric, Hancock, Pacific Fabric 등이 과거의 Fabric Land와 비슷한 가게들이다. 물론 전화번호부의 뒷 쪽에 노란 종이로 되어있는 부분(고로 yellow page라 불리는 곳)을 보면 비지니스들이 종류별로 나와 있으므로 참고로 해도 되겠지만 인터넷에서 Fabric Store North Seattle (또는 당신이 사는 곳)라고 구글하면 (google.com에서 서치하는 것을 의미) 장소나 집에서 가게까지 가는 법를 지도로 확실하게 볼 수 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패턴북에는 다양한 옷들 뿐만 아니라 커텐, 가방, 여러가지 손으로 만들수 있는 craft 들도 많이 나와 있으므로 시간이 있고 바느질에 조금의 관심이 있으면 꼭 한번 뭔가를 만들어 보시길 권한다. 한국과 달리 특별한 강습을 받지 않고도 왕초보가 혼자서 옷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잘 준비된 자료들을 직접 경험해 보는 것은 미국 사회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와이언 셔츠로 시작하여 가장 최근 작품으로는 제작년 딸아이의 프람(prom) 드레스가 되겠다. 007을 주제로 한 프람이라 딸은 거기에 어울리는 패턴을 고심해서 선택하고 금색으로 번쩍거리는 천과 그 외 필요한 지퍼와 안감, 그리고 실을 골라 $100을 쓰고 왔는데 나는 그렇게 거창한 옷은 처음 만드는 거라 엄청 마음을 졸였다. 시간 여유가 없어 16시간을 스트레이트로 만들고 세탁소가 가져가서 다림질을 부탁하고 찾아오니 딸애가 가야 할 시간이었다. 세탁소에서 다림질하는 아이디어는 아는 분이 주셨는데 나도 처음 배운 것이다. 세탁소에서 다림질을 하면 홈메이드 느낌이 싹 없어지고 반듯한 백화점 옷처럼 된다.

늘 그렇듯이 당시에는 고심하고 고생스러웠지만 지나고 나면 그만한 추억도 없다. 딸은 남은 평생 프람을 떠 올릴 때 마다 그 때 그 드레스, 그리고 밤새 재봉틀을 돌리던 엄마를 쉬이 잊지 않으리라. 그리고 그런 엄마의 모습이 내가 기억되고 싶은 모습이기도 해서 우린 함께 좋은 추억을 만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