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6일 월요일

환갑이 된 실내 화초

 

지금 서른 둘인 딸이 어렸을 때 알라스카로 이사 가시는 분의 며느리를 통해 이 화초를 어쩔 수 없이 받아 오게 되었다.  그 때 벌써 시어머님이 몇 십년 키웠다고 들었고 내가 27-8년 데리고 있었으니 환갑이 거의 되었거나 넘었을 수도 있겠다.  사실 나는 실내 화초에 애정과 관심이 별로 없다.  문만 나서면 식물들이 많은 지라 굳이 집 안에 까지 들여와 신경 쓰며 키울 정도의 식물에 대한 애정은 타고 난 것 같지 않다.  특히 겨울에 난방을 나무 때는 스토브에 거의 의지하기 때문에 불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기온 차이로 식물들이 힘들어 할 줄 알기 때문에 실내 화초 키우기는 미리 포기했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그 긴 세월동안 화분과 흙을 한번도 갈아주지 않았고 거름도 준 적이 없고 물 주는 것도 잊고 살다가 어쩌다 한번씩 주는 데 미안한 마음에 한달에 한번은 챙겨 주자고 물 주는 날짜를 써서 화분에 달아 놓았건만 그 조차 들여다보기를 잊고 있다가 생각 나서 보면 1달 반이 후딱 지나갔고... 거기다 둘 곳이 마땅치 않아 나무 때는 스토브와 가까이 있으며 잎들이 겨우 내다 보는 창은 북향이다.  아이들이 중 고등학교 다닐 때 내가 일을 너무 하고 싶어 남편을 졸라 아이들이 걸어 다닐 수 있는 학교 근처에 아파트를 구해 2년간 양쪽 집 생활을 했는데 난 일주일에 한번씩 컴포스트만 챙겨오고 집에서 생활 하지 않아 가을부터 봄까지 히터가 없는 냉골에서 물도 없이 버틴 화초이다.  잎들이 누렇게 마르면서 하나씩 떨어지고 끝에서는 또  새 잎들이 나고 하면서 긴 목을 가지게 되었다.  

몇 해 전부터는 찐득한 액체를 뿜어 내기 시작했다.  그 마저도 그냥 두었더니 화초 옆 유리들은 뿌엿게 코팅이 되었고 카페트와 가구들까지 끈적끈적한 물질로 뒤덥혔다.  더 이상 내버려둘 수 없어 잎들을 닦아주기 시작했는데 닦으면서 보니 잎에 뭔가가 덕지덕지 붙어 식물의 진을 빨아먹고 있는 듯 했다.  자세히 보니 움직이는 벌레는 아니고 잎의 중심 줄기를 중심으로 줄기를 따라 줄줄이 붙어 있는 것을 보니 영양이나 물을 도둑질하는 존재들이 분명했다.  그 놈들도 어린 것부터 어른까지 모습이 다양한데 처음 자리 잡는 모습은 아주 얇은 종이같아 그 존재가 잘 보이지 않다가 점점 갈색이 돌면서 확실하게 그 존재를 드러낸다.  크기와 두께들도 달라 그 놈들의 연륜도 보였다.   그 때서야 왜 끈적한 물질을 쏘아댔는지 이해할 듯 했다.  미안한 마음으로 잎들을 하나하나 닦는데 자가 면역 질환이란 용어가 머리에 떠 올랐다.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들이 생기니 나름 방어 대책으로 끈적한 물질을 뿜어댔는데 그것 때문에 잎들이 제 기능을 못할 정도로 위에 딱딱한 막이 생긴 것이었다.  그 방어 대책이 침략자들은 막지 못하고 그대로 두면 자신이 병들게 된 셈이다.  

그 애절함을 닦아주면서 앞으로는 내가 잘 보살펴주겠다고 약속에 약속을 화초에게 하고 일주일 내내 빠진 곳이 없는 지 보살폈다.  처음으로 캄포스트도 흙위에 한켠 뿌려 주었다.  며칠있다 보니 캄포스트에 섞여 들어온 씨들이 싹을 틔웠는데 또 며칠 후 보니 모두 말라 죽었다.  그 아이들 살리자고 안 주던 물을 자주 줄 수도 없는 노릇.  노장은 지금까지 익숙한 방식으로 앞으로도 계속 돌볼 것이다.  단 더 이상 힘겨운 싸움을 하지 않도록 자주 들여다 봐 주면서 잎도 자주 닦아주고...

이런 care 없는 care 속에서 버티어 온 이 화초는 이제 내가 존경하는 식구이다.  가끔 다른 분들이 가지에 뿌리를 내려 길이를 짧게 해주라고 제안하는데 나는 이 아이의 60년(?)  투쟁 역사를  그대로 두고 미안한 마음을 느끼며 함께 있고 싶다.  긴 목은 문제되지 않는다.  사진에는 램프에 기대고 있는 것 같지만 아니다.  긴 목은 단단하고 힘이 있어 혼자 서 있는데 아무 도움이 필요치 않다.  

이 노장은 나에게 식물의 적응력과 살아내는 힘이 어디까지인지를 보여주었고 지금도 건장하다.  어쩌면 나 또한 그걸 알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