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다 지나갔는가 싶더니 아직 따스함을 걷어가지 않고 덜 익은 열매들을 익혀 주어서 너무나도 감사한 초가을이다. 생기가 돌기 시작하는 봄이 왔는가 했더니 여름이 다 가고 가을을 맞이해야 한다는 세월의 흐름이 해마다 더 빨라진다는 느낌이다. 올해도 미적미적 다른 일들을 앞세우고 가을 야채 씨들을 지난 주에야 뿌렸다. 예년같은 가을 날씨였으면 좀 늦었을텐데 다행히 현재 기온이 싹 틔우고 키울만한 정도이다.
요즘 볕에 토마토가 잘 익고 있어 매일 저녁 잘 익은 놈들만 걷어주고 있다. 주키니 호박 2개도 아직 열매를 달고 있으며 단호박 종류들은 서서히 열매 색깔을 바꾸어 가고 있다. 단호박의 껍질을 손톱으로 찔러보아 안들어갈 정도가 되어야 잘 영글은 것인데 단호박을 덜 영글었을 때 따면 맛이 없어 먹을 길이 난감하다. 나는 잘 영글도록 두되 서리 오기 직전에 딴다. 그리고 단호박을 쪄서 먹을 때 껍질 부분이 제일 타박하고 맛있으므로 껍질을 깍지 않길 권한다. 요즘 가게에는 벌써 덜 영글은 단호박들이 많이 나와 있는데 호박 껍질 색깔이 녹색이고 반질반질 싱싱해 보이면 덜 영글은 호박이라 맛이 없다. 녹색이 퇴색되어 투박한 짙은 녹색으로 변하고 노란 색과 주황색이 섞여 있으며 손톱으로 아주 살짝 눌렀을 때 단단한 느낌이 있어야 잘 영글은 것이다. 단호박은 집에서 키운 것과 가게 산 것의 맛 차이가 아주 큰 야채라 아무리 유기농으로 잘 영글은 호박이라 하더라도 가게에서 산 것은 결코 집에서 키운 것의 단맛과 타박함을 따라 갈 수가 없다. 집에서 키운 것은 당도도 높을 뿐 아니라 타박하기가 타박 고구마나 밤과 같고 속 살의 두께가 두껍다. 작년에 처음 키워 본 butternut squash도 얼마나 단 지 어븐에 구운 호박을 먹으며 남편이 꿀을 섞었느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매년 가을, 잘 영글은 첫 호박을 쪄 먹는 것은 홈 가드너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고 여겨진다.
해마다 다양한 색깔의 체리 토마토들을 심는데 sungold(주황색)와 sweet 1000(빨간색)가 가장 잘 자라고 열매도 풍성하다. 위 사진의 가운데 있는 녹색도 다 익은 열매 색이다. 덜 익었을 때에는 연두색인데 익으면 노란 빛이 돌고 껍질이 두꺼우며 열매를 많이 맺지는 않는다.
토마토가 익기 시작할 쯤이면 가지의 끝을 잘라주고 열매없이 달려있는 잔잔한 꽃들도 떼어 버린다. 그 놈들까지 키워 익히기에는 여름이 너무 짧기 때문이다. 왕성하게 자랄 때 가지 끝을 자르면 마디마디에서 잔 가지가 올라오겠지만 열매가 익을 쯤에 끝을 자르면 잔가지가 조금 올라오기도 하고 거의 올라오지 않기도 한다. 새로 올라오는 잔가지들은 떼어주고 열매를 가리고 있는 잎들을 70-80% 잘라내어 버린다. 그래서 식물의 에너지를 달려 있는 열매 익히는 곳에 집중시키면 훨씬 빨리 익고 잎을 뗐기 때문에 익은 열매를 확하기도 훨씬 쉽다.
포도 송이처럼 주렁주렁 달려있는 sungold는 익은 열매가 오렌지 색이고 아주 왕성하게 자라고 열매도 일찍, 많이 맺는다.
갓처럼 무맛이 나 쌈에 섞기 좋은 Arugula의 씨들을 걷고 남은 가지들을 땅위에 마르도록 두었더니 뒤에 익은 씨들이 떨어져 이렇게 잘 자라고 있다. 큰 놈들을 하나씩 뽑아 솎아주고 각자의 공간이 알맞으면 잎을 하나하나 수확한다.
올해 상추씨를 처음 받아본다. 뽑아 정리할 때 종류별로 한 두개씩 남겨 두었더니 씨가 잘 영글었다. 미세스 리가 전체 송이의 절반 이상이 익어 벌어지면 전체 송이를 잘라다 말리면 된다고 하시는데 나는 매일 영글은 씨들을 손으로 하나씩 거둔다. 그래서 내 씨들은 발아률이 아주 높은 것 같다. 씨가 다 익으면 민들레 꽃처럼 날개를 달고 바람에 날아갈 준비하는 것이 신기하다
한 가지에 butternut squash가 5개 달렸다. 싸이즈도 듬직해서 좋다. 지난 주에는 잎을 만져보고 좀 보드라운 놈들만 따다 줄기에서부터 가시를 벗겨내고 들깨 가루를 위에 뿌리고 쪄 먹었더니 먹을 만했다. 호박도 토마토처럼 열매가 빨리 익도록 가지 끝을 잘라주고 열매가 없는 잔가지들도 모두 정리해 주었다.
한국 여름 호박인데 길쭉하게 자라며 다른 호박보다 달다. 그런데 이 호박은 찬 바람이 불고 다른 호박들의 가지 치기할 쯤이면 누렇던 가지의 마디마디에 위의 사진처럼 새 순들이 자라고 열매도 맺기 시작한다.
방아꽃은 벌들이 무척 좋아한다. 호박벌들을 밭 주변으로 유인하기에 잘 쓰인다.
오이가 마감할 때가 다 되어가면 길쭉하던 모양에서 이런 모양으로 변해간다. 대신 한여름의 오이보다 훨씬 달다.
요즘은 씨를 수확하는 계절이다. 익는대로 따다 각자의 통에 모으고 있다. 참고로 씨를 받을 때 엄마가 OP(open pollinated)로 받은 씨였으면 수고의 가치가 있는데 만약 씨 봉투의 이름 옆에 (F1)이라고 쓰여져 있으면 씨를 받지 않는 것이 좋다. (F1)은 개량종(hybrid)을 뜻하는데 병에 대한 저항력이나 왕성한 성장력 내지는 또 다른 개량종의 좋은 점들이 한 세대만 효과적이라고 한다.
그리고 씨 얘기가 나왔으니 씨 카탈로그 회사들을 몇군데 언급하고 싶다. 화원에서 파는 씨들의 구색이 충분하지 않으면 많은 미국인 가드너들처럼 우편으로 씨를 구입하는 방법도 있다. 각 회사의 웹싸이트에 들어가 카탈로그를 보내달라고 요청하거나 전화를 하면 보통 공짜로 보내준다. 카탈로그를 보면 알겠지만 선택할 수 있는 종류가 다양하고 씨에 관한 자료가 자세히 나와 있어서 좋다. 우송료가 추가된다는 점이 한가지 단점이다. 아래 세 곳 외에도 무수히 많지만 이 곳들은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회사들이다.
Johnny's Selected Seeds -카탈로그의 내용이 아주 잘 정리되어있고 채소 농사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들이 잘 구비되어 있는 곳이다.
Seeds of Change - 내가 제일 좋아하는 씨 회사이다. 100% 유기농 씨들만 판매하는 곳으로 내 경험으로보면 씨들의 발아율이 다른 회사 씨들에 비해 좋았다.
Uprising Seeds - 큰 회사는 아니지만 100% Pacific Northwest(워싱턴주와 오레곤주 지역)에서 키운 씨들이고, 100% 유기농이고 100% Open-Pollinated(개량종이 아닌 자연수정된 씨=집에서 씨를 받을 수 있는 씨) 된 Heirloom 씨들(전통 종자?)이다. 그런만큼 종류가 다양하지는 않지만 앞으로 내가 support하고 싶은 회사이다. 에버렛 co-op에 가면 이 회사 씨를 살 수 있는데 종류는 한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