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 우리집 오이들은 돌아 가시기 일보 직전이었다. 미세스 리가 가슴에 품고 싹 틔워 수돗물 한번 주지 않고 키워 준 아이들이라 나도 나름대로 정성껏 돌보았는데 땅에 묻기 며칠 전 부터 잎들이 처지고 맥이 없더니 땅에 묻고 나서도 한참동안 아무 반응이 없었다. 새 자리에 적응도 못하고 힘들어하고 있는 와중에 역사적 Heat Wave가 한동안 계속 되니 그 땡볕을 견뎌야 하는 오이들 모습이 참으로 불쌍했다. 오죽하면 친구가 올 해 오이는 자기 집에서 갖다 먹어야겠다는 코멘트까지 했는데...
덩치들이 너무 작아 마디마다 올라오는 꽃과 열매를 계속 따 주었다. 자라는 속도가 모두 달라 어떤 오이는 5마디까지, 더 작은 오이들은 7, 8마디까지 체격이 어느 정도 회복될 때까지 따 주면서 뜨거운 열기로 부터 뿌리를 보호하기 위해 흙 위를 넉넉히 덮어 주었다. 자리 잡지 못한 뿌리를 감안해 적당한 양의 물을 한동안 매일 주고 기다렸더니 이제는 건강을 많이 회복하고 오이들도 많이 맺혔다. 힘들게 건강을 되찾은 녀석들이 기특해서 수시로 놀러 간다.
오늘 아침 활짝 핀 꽃들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서 오이 꽃들을 그 전엔 제대로 본 적이 한번도 없었음을 깨닫고 나에게 물었다. 미선씨, 오이 꽃 (제대로) 본 적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