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올려고.
가을을 시애틀의 가을답게.
어제도 오늘도 비가 내린다.
가마솥에 눌은 누룽지로 끓인 숭늉은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 꽉 박혀 있어 그 구수함은 지금도 늘 함께 하고 싶은 특별한 음식이다. 지금 돌아보면 부산 시내 한복판에서 어떻게 나무 장작을 때고 큰 무쇠 솥에 밥을 해 먹는 호사를 누렸을까. 그 시절에는 그런 삶이 복잡한 동네 속에서도 가능했었구나를 새삼 깨닫게 된다.
내 기억 속의 누룽지는 무쇠 솥만이 만들 수 있는 그런 고소함을 갖고 있는데 무쇠 후라이팬도, 사기 코팅된 무쇠 팬도, 압력 솥도 사용해 보았지만 온도 조절이 제대로 안되서인지 그 맛을 만들지 못하다가 우연히 가벼운 크레이프 팬(Crepe; 한글 사전에 크레이프라도 번역 되어있어서)에서 가까운 맛을 찾았다.
Non stick 코팅이 안되어 있는 carbon steel 팬이라야 한다. carbon steel 팬은 무쇠와 같은 쇠이지만 쇠의 밀도가 더 높다고 해야 하나? 더 단단해서 가벼우면서 매끈하고 음식이 덜 달라붙는다. 물기가 있으면 녹 스는 점은 같으니 사용후 기름기는 종이 타올로 그냥 닦기만 하면 되고 물기가 있으면 팬을 데워 바싹 말린 후 보관해야 한다. 가끔씩 중고 가게에 녹슨 팬들이 나오는데 나도 그런 팬들을 2개 구입해서 녹을 닦아내고 seasoning해서 사용하고 있다.
압력 솥에 밥을 할 때 압력을 반만 사용해서 찐득하지 않게 밥을 한 후 크레이프 팬에서 굽는데 불 조절이 중요한 것 같다. 중간보다 한 칸 약하게 하다가 그 보다 반 칸을 더 줄여보니 눌는 모양새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노르스름한 색이 강하고 살짝 탄 부분이 여기 저기 박히니 그 냄새가 난다. 내가 그리워하던.. 탄 부분은 나중에 칼로 긁어 내면 된다. 나는 그냥 먹지만.
밥을 예열된 팬에 너무 얇지 않게 물에 적신 숟가락으로 꾹꾹 눌러 담고 가장자리도 정리한 후 굽기 시작하는데 가장 자리의 색깔이 노르스름해지면서 조금씩 들리기 시작하면 뒤집기로 조금 들어 아래쪽 색깔을 확인하고 맘에 들면 뒤집는다. 아래쪽 전면이 팬에 닿도록 숟가락으로 전체를 눌러준다. 뒤집은 쪽이 굽히는데 시간이 더 걸린다. 나는 물에 삶았을 때 부드러운 누룽지를 좋아해서 가운데 흰 밥이 좀 있도록 만든다. 그리고 이렇게 만든 누룽지는 물에 넣고 잠깐만 끓이면 먹을 수 있다. 팬에 탄 부분들이 있어도 그대로 두고 새 밥을 넣어 만들고 다 끝난 후에도 누룽지 전용 팬이라 적당히 긁어내고 보관한다.식으면 냉동실의 냄새가 배이지 않도록 밀폐 용기에 넣어 냉동 보관한다. 지난 번 캠핑갈 때 좀 가져 갔는데 현미 가래떡만 넣고 함께 끓였더니 걸쭉하고 구수한 훌륭한 아침 식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