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30일 화요일

정년 퇴임하다

 난생 처음으로 정년 퇴임이라는 경험을 10월 중순에 하게 되었다.  58세로 작년에 이미 퇴임한 남편 곁에서 쥐꼬리만한 수입이라도 내가 벌고 있다는 사실이 매달 감사했고 파트 타임으로 하는 병원 통역 일을 너무나도 즐겼기 때문에 오히려 이 일을 어떻게 멈출 수 있을까가 걱정될 정도로 일도 즐기고 돈도 벌면서 내 자신의 생활도 다 할 수 있다는 충족감 속에서 살아왔다.   

그러다가 10월 중순, 사회의 많은 변화 속에서 일을 그만 해야겠다는 결정을 내리고 한 달 모자라는 61세에 돈 버는 일을 그만 두었다.  언젠가부터 이런 외부 조건의 흐름에 맞춰 내려야만 하는 결정들은 매번 새로운 문을 열어주고 그 변화들에 의해 내가 지금까지 성장해 왔음을 어렴풋이 느끼게 되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일단 선택하고 삶에 맡겨보자는 마음이었다. 그래도 아쉬움이 좀 남아 온라인이나 전화 통역 할 계획은 갖고 있었다.  

그런데 하루, 이틀, 사흘 놀면서 보니 삶의 느낌이 완전히 달라졌다.  일터에 가야 하는 시간 챙김이 없어지고 나니 무한한 여유가 가슴 속에 좍 깔리면서 일상의 소소한 일들이 소소하지 않고 손이 하는 모든 일들이 섬세하게 느껴지며, 과정들이 더 잘 보이고, 배움이 동시에 일어나면서 삶과 내가 함께 있음을 처음으로 깊이 느끼게 되었다.  감사함이 더 크게 느껴지고 우선 순위도 달라졌다.  큰 선물을 받은 것이다.  인생 마지막 장의 첫 출발에 이 선물의 존재를 받고서야 알게 되었다.  

통역 에이젼시들에게서 계속 이멜들이 오지만 이제는 한 치의 미련이 없다.  지금까지는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그렇게 살아왔고 이제는 다르게 살 때가 되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앞으로 나에게 다가 올 하루 하루를 서두름없이 삶과의 좋은 관계로 채우고 싶다는 바램 뿐이다. 😄

Comments: 

퇴임- 눈에 확 들어오는 소식이군요. 보람된 삶을 살아오신 분 같아요. 퇴임을 이렇게 설레고 희망적으로 쓰시다니요!  

저희도 남편이 내년 여름이면 은퇴를 합니다. 제가 은퇴 당사자는 아니지만 여러가지 생각이 왔다갔다하는 요즈음이예요.

omicron covid.. 더 강력한 변종이 온대륙을 뚫었다는 뉴스에 종일 답답하다가 문득 숲에서 6일을 지내다 오셨다는 대목을 읽으면서 와 정말로 놀랐답니다. 👏🏻 👏🏻👏🏻 
저도 부산 출신이고요, 군데군데 반가워하며 글을 읽는 중입니다. 힐링이라고 하죠? 쓰신 글들이 저한테 그러네요. ㅎㅎ
고맙고 좋습니다. 다시한번 퇴임을 축하드리고, 하루하루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서울에서 정혜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