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컴퓨터를 열자니 걱정이 앞섰다. 빠르게 변해가는 디지털 세상에서 아나로그의 마인드를 갖고 살다보니 빠른 변화에 맞추기 보다는 내려 놓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해서 오랫동안 이메일도 컴퓨터도 외면한 체 살아 왔는데 나누고 싶은 사진들이 몇장 생겼다. 오늘 컴퓨터가 부팅이나 제대로 할까? 인터넷 연결은 가능할까? 늙은 랲탑이 아직 제 구실을 할 수 있을까? 인생 후반기를 살고 있는 나 자신과 오버렙 되면서 마냥 덮어두기 보다는 깨워서 가능성을 확인하기로 했다. 어차피 한번은 해야 할 일인데도 작은 두려움과 염려들이 랲탑 열기를 주저하게 만들었고 딱히 꼭 열어야 할 이유가 없었던 점도 있다. 그러나 그 날 저녁의 감동을 글로 남길 수 있도록 깊은 잠에서 깨어나 이만큼의 작업을 가능하게 해 준 늙은 컴퓨터에게 먼저 감사함을 전하고 스토리 텔링을 시작할까 한다.
내가 자주 걷는 메도우데일 공원은 카운트 공원인데 200 에이커의 울창한 숲이 서쪽으로는 바닷가를 끼고 있다. 차를 주차하고 1마일 남짓 걸어 내려가야 하기 때문에 어떤 이들에게는 불편하게 여겨질 이 점 때문에 그나마 더 복잡해지지 않는 데 도움이 되지 않나 여겨진다.
나는 주로 늦은 오후에 가는데 집에서 이것 저것 하다보면 늘 막차 타는 느낌으로 어둠이 내리기 시작할 무렵에야 달려가곤 한다. 그 날은 평소보다 더 늦어 올라 오는 사람들이 거의 없고 중간에서 데니스 아저씨를 만났다. 공원에서 가끔씩 만나 얘길 나누다가 집으로 차 마시러 오라고 초대해 주셔서 방문한 계기로 이젠 친구가 된 아저씨이다. 아저씨는 노약자들이 사용하는 찻길을 따라 공원 뒷쪽에서 내려와 나와 반대로 걸으시기 때문에 주차장으로 돌아올 때에는 깜깜한 숲길을 나 혼자 걸어야 한다는 생각에 바닷가에 누군가 한 분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갖고 아저씨와 함께 바닷가로 내려 갔다.
철도 다리를 지나 마주한 넓은 하늘에는 지는 해를 뒤로 품고 펼쳐진 구름들이 용광로의 빛을 내고 있었다. 주변으로 늘어진 구름들도 다양한 오렌지 빛을 발하는데 그런 환상적인 분위기는 처음이었다. 바닷가에는 우리 외에는 아무도 없어 나와 데니스 아저씨만 우와 우와를 연발하며 보고 있었는데 보는 동안 색깔들이 계속 변해 갔다. 자연을 사진으로 찍을 때 마다 기술이 부족해서인지 아름다움을 다 담지 못하는 실망감을 많이 경험했기에 선뜻 사진 찍을 생각을 못하고 주저하고 있는데 갑자기 젊은 목소리들이 바닷가로 우루루 몰려 나왔다. 근처 중학교의 운동팀으로 보이는 10명 남짓의 아이들이 코우치 인솔하에 밤바다에 수영하러 온 것이다. 이곳 저곳으로 뛰어다니는 젊은이들의 목소리와 실루엣으로 생기가 더해지니 내 심장도 덩달아 빨리 뛰기 시작했고 이런 조합을 가슴에만 묻을 수 없다는 생각에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적막하고 어두운 밤의 시원한 바람과 갯내음, 거기에 더해진 아이들의 즐거운 소리들을 모두 담을 순 없었지만 눈으로 보이는 모습의 일부만이라도 담았다. 사진에 담긴 모습을 확대해서 내 시야 전체를 채우는 밤 바닷가에 서 있다고 상상해 보시라.
레인져 숙소에서 아저씨와 헤어지고 깜깜한 숲길을 혼자 걷는 내내 감동으로 꽉 찼던 가슴에 두려움이 들어올 자리가 없었다. 그래도 고맙기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걷는 동안 여기 저기서 들리고 내가 주차장으로 다 왔을 때 그 아이들도 떠났다는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날 저녁의 감동을 온몸으로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