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7일 화요일

나에게 여행이란

나와 남편의 현재 사는 모습은 남에게 보여 줄 거리는 없는데 우리는 충분한 만족감을 느끼고 산다.  어떻게 이 나이에, 이 자리에, 이런 모습으로 살게 되었는가 되돌아보면 여행들이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떠났던 나나 보냈던 남편이나 여행들을 통해 많이 달라졌던 것 같다.

병원 통역 일을 하면서 많은 한국분들을 만났는데 가끔씩 기다리는 시간에 이런 저런 얘기들을 나누다가 여행 얘기가 나오면 내 생각과 상대의 생각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혼자 여행하는 걸 알게 되면 데려가 달라는 여자분들도 많았고 어떤 남자분은 다음 여행에 자기 부인을 꼭 좀 데려가 달라고 부탁을 받은 적도 있다.   

내가 여행을 결정할 때에는 그 때마다의 목적이 달랐다.  음식을 배우기 위해 가기도 하고, 문화나 사람들이 궁금해서 가기도 하고, 편안함에 빠져 있는 나 자신을 건져내기 위해 가기도 하고, 도전하는 마음으로 부딪혀 알고 싶은 대상이 있어서 가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가이드로 가기도 하는 등 매번 출발하는 이유들은 달랐지만 공통적으로 내 자리에 돌아오면 그만큼 달라진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도착 직 후 느낀다기보다는 살면서 소소한 선택들 속에 배어있는 변화를 느꼈다.  나 자신뿐 아니라 남편도 느꼈는지 나의 여행을 적극적으로 서포트했다.  그러면서 함께 변화해 온 것 같다. 

여행 하겠다고 길을 나서면 온통 새로움 뿐이다. 다양한 환경에 부딪히며 많은 사람들과 스쳐 지나가는 중에 나의 호기심은 늘 사람에게 있었고 사람들과 엮길 기회를 항상 기대하면서 다녔다.  사람들을 통해 만나는 삶의 다양함에는 늘 배울 점들이 있고, 깊이 공감되는 사람들을 만나면 가슴이 뜨거워지며 오래 오래 그 분들을 붙들고 싶었다.  나의 원함이 그런 기회들을 끌어왔는지 그 많은, 소중한 만남들은 오로지 나 만의 경험으로서 나 자신의 일부가 되었고 새롭게 다가오는 미지의 하루 하루 속에서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느낀다.    

나에게 여행이란 낯선 대상을 편안한 대상으로 바꾸는 그 과정이다.  두려움이 항상 동반되는 낯섦에서 출발했다가 어느 정도 알게 되면 대상에 대한 내 맘이 편안해 짐을 거듭 경험했다. 그 대상은 사람일 수도 있고, 장소일 수도 있으며 물건이나 문화일 수도  있겠지만 어떤 대상이냐는 차이가 없는 것 같다.  그 과정을 겪는 동안 편안함 속에서는 만날 수 없는 나 자신의 새로운 모습들을 또한 만나게 된다.   편안해서 매달리고 싶고, 싫어서 피하고 싶고, 좋아서 더 하고 싶고, 거북해서 빨리 피하고 싶은 다양한 대상들에 대한 내 감정들을 경험했다.  지금도 그 여행들을 머리에 떠 올리자면 눈으로 본 것들에 대한 기억은 삼삼하지만 감정들은 그 때 그대로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래서 나에게 여행은 집을 떠나는 순간부터 돌아올 때까지의 모든 새로움들을 경험하는 것이다. 

여행을 결정하고 나면 코스를 정하고 비행기 좌석 예약을 끝낸 후 준비가 시작된다.  처음에는 한달 전부터 가이드 북을 꼼꼼이 읽고 들고 다녔는데 이제는 많은 정보없이 목적지에 도착해서 그 곳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다니는 편이 더 좋다.   사람들에게 의존하면 그 곳 사람들을 더 많이 느낄 수 있는데 한번은 딸과 바르셀로나를 가면서 내가 제안했다.   비행기만 타고 가서 모든 정보를 사람들에게 의존해서 바르셀로나를 경험해보자고... 비행기에서 내리면서부터 묻기 시작했는데  딸은 지금도 그 때 만났던 사람들 얘길 꺼내고 함께 웃는다 .    부엌에 있는 냉동실의 일부를 비우고 남편이 먹을 음식으로 채우기 시작한다.  도시락을 챙겨야 했기 때문에 1인분씩 통통이 담아 여러 가지 음식들로 꽉 채운 후 내 짐을 준비한다.   직장 다니며 챙김을 받다가 혼자 챙겨야 하는 변화가 불편할텐데도 남편은 나에게 이런 기회를 선물하는 기쁨으로 싱글벙글이다.   

3년전인 2018년 늦가을에 뭔가 낯선 것에 부딪히고 싶은 욕망이 절실해서 오랫동안 마음에 두고 있던 베를린 여행을 결정했다.  가는 김에 북쪽으로는 세계에서 행복 지수가 가장 높은 사람들이 산다고 하는 코펜하겐을, 남쪽으로는 독일 외곽을 거쳐 맥주가 그렇게들 맛있다고 하는 Czech Republic의 프라하를 추가했다.  이 여행을 결정한 이유로는 베를린을 통해 근대 역사를 현장에서 돌아보고 현재 베를린 젊은이들의 창작 열기를 보고 싶은 호기심외에도 58세에 혼자 떠나는 배낭 여행을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어떻게 경험하게 될 지가 더 궁금했고 이 나이의 나를 대하는 세상을 만나고 싶었으며 스마트 폰없이 테블릿 하나로 여행이 아직 가능한 지도 테스트해 보고 싶었다. 

어쩌면 이런 스타일의 여행으로는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몇가지 원칙도 세웠다.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을 되도록이면 해보자. ---세 도시에서 한번씩 couch surfing을 하되 누구를 막론하고 나를 받아주는 첫 집으로 무조건 간다 등등.    그 후에 터진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이젠 진짜 마지막이 될 수 있는 이 여행에서 이 원칙들이 정말 값진 경험들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그 여행이 마무리 될 쯤에는 여행을 통해 내가 얻을 것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느낌과 함께  이제는 내 삶을 만들어가는 나 자신과 좀 더 깊은 관계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어만 귀소 본능을 가진 게 아니라 나에게도 있는 것 같다.  세상을 돌고 돌아 돌아온 내자리가 이제는 내가 있을 곳이라는 생각이 가슴에서부터 올라왔다. 그 나이가 되었나보다.

요즘에는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가족들을 위해 만들었던 음식들을 가끔씩 다시 만들어 본다.  그 때 맛있게 먹었던 그 음식들을 다시 만나며 그동안 변해온 나를 새삼 느낀다.  또한 기회를 만들어 로컬을 벗어난 Day trip같은 여행도 하지만 매일의 일상 자체가 이제는 여행처럼 느껴진다.  산책중에 헬로우하며 지나치는 사람들의 미소들이 내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고 장을 볼 때나 중고 가게에서 만나는 친절함, 새로운 것들을 느끼는 반가움등등이 집을 떠나 여행할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음식과 잠자리, 샤워가 편리하다는 장점이 있는 여행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익숙하지 않은 상황을 대하고 두려움으로 맘이 불편할 때면 처음이라 그런 줄을 알아차리고 그 또한 익숙함으로 바뀌리라는 것을 익혀 배워왔기에 그 두려움을 옆으로 살짝 비켜 놓고 새로움을 향해 그냥 뚜벅뚜벅 가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