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8일 화요일

고추장 담그다

냉동실에 봉투마다 조금씩 들어있는 고춧가루들을 모두 모아 고추장을 만들었다. 제작년에 만든 고추장을 아주 맛있게 먹은지라 같은 방법으로 또 만들었다.  보통 초 봄에 담아 여름에 맛들인다고 하는데 아직 여름 뒷끝이라 떠나지 않고 있는 해에 조금은 맛들이기가 이루어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시작했다.  일단 시작만되면 겨울동안에도 천천히 진행될 것이다.  미세스 리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찹쌀 식혜를 만들어 약간 걸쭉한 시럽으로 졸인 후 고춧가루와 청국가루 그리고 소금을 섞어 만들었다.
굳이 찹쌀 식혜를 만들지 않아도 찹쌀 가루나 밀가루를 사용해서 더 쉽게 만들수 있는데 왜 번거롭게 그렇게 하느냐고 주변에서들 얘기하는데 나는 질감으로나 맛으로나 찹쌀 시럽으로 만든 고추장이 제일 만족스럽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무엇을 배우고 각 과정이 어떻게 느껴질까 하는 시작 전의 기대대로 끝내고 돌아보니 몸은 고달팠지만 새로 배운 것도 있고, 알고 있었지만 좀 더 손쉽게 하는 요령을 익힌 것도 있고, 때로는 재료를 느끼는 섬세한 순간 순간들도 즐기면서 보냈던 일주일이었다.

찹쌀 물엿 만들기
미세스리께서 큰 밥통을 빌려주시겠다는데 마다하고 작은 밥통 하나만으로 만들었다.  식혜를 만들 기회가 없어 익숙하지 않은 일이라 이번 기회에 나름대로 마스터 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매일 찹쌀 9컵을 불려 압력으로 두번에 나누어 찌고 밥통을 맥시멈으로 채워 식혜를 만든 후 짜서 시럽이 되도록 끓이고 식힌 후 냉장고에서 또 따로 식힌 후 냉장고의 큰 솥에다 차곡차곡 모았다.  아마 8번 이상은 만든 것 같다.  이번에 시럽 만든 것을 미세스 리에게 검사 받으면서 배운 것이 있는데 시럽이 너무 걸쭉할 필요는 없지만 너무 묽으면 고추장 맛 들일 때에 곰팡이가 자꾸 생긴다는 말씀이다. 오묘한 말씀이다.

찹쌀 식혜를 만들기 위해  미세스리와 함께 엿기름을 사러 갔는데 파릇파릇한 싹이 많이 보이는 걸로 선택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물에 한시간 정도 불렸다가 박박 주물러 뽀얀 물을 짜 내고 짜낸 껍질에 물을 조금만 더 붓고 또 박박 주물러 짜 내라고 하시면서 물을 너무 많이  잡지 말라신다. 시키는대로 최대한 뽀얀 물을 짜내면서 도대체 어떻게 싹 틔운 보리가 곡식의 전분을 당분으로 바꾸는가 하는 질문과 함께 엿기름의 껍질과 새싹과 뽀얀 보리 중 어느 부분이 그 역할을 하는지가 궁금했다.  그래서 답을 찾아보니 보리를 불려 싹 틔우면 보리 속의 전분을 당분으로 바꾸는 효소가 활성화되면서 자라기 시작하는데 싹이 아주 조금 나왔을 때에 말리면 효소의 작업을 일단 중단시키는 것이다.  이 상태에서 가루로 만들어 두었다가(이것이 엿기름) 익힌 찹쌀과 섞어 효소의 활동에 적합한 온도로 맞추어주면 중단되었던 효소의 활동이 계속되어 찹쌀의 전분을 당분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러니 엿기름에서 중요한 부분은 싹도 아니고 껍질은 더더욱 아니고 보리 가루인 것이다.  그래서 가라 앉힌 엿기름 물을 밥통에 부울 때에 가라앉은 덩어리의 위쪽 고운 가루도 함께 넣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당하신 말씀!

보리 싹 틔워 엿기름 만들기 
일전에 Whole Foods에서 싹틔우는 보리(sprouting barley)를 사 두었는데 궁금한 김에 아예 싹을 틔워 엿기름이라는 것이 어떻게 만들어 진 것인지 알고 싶었다.  약수터에서 생수도 넉넉히 받아오고 필터로 걸른 물을 매일 여러 번씩 주면서 애써 키웠는데 싹트지 않은 보리가 20%는 되는 것 같았다.  미세스 리도 그랬다고 한다.  묵은 보리라 그런지 알 수는 없지만 일단 싹이 5mm정도 자랐을 때 보리는 쉬이 상한다는 것을 아는지라 선선한 그늘에서 말렸다.  그런데 말리는 며칠동안 보리싹이 계속 크는 것이었다. 보리 싹을 너무 키우면 효소의 능력을 다 소모하게 되어 식혜를 잘 삭히지 못할 것인데 말리는 동안 자랄 것을 예상치 못했다.  다음에는 뿌리가 나오고 잎이 막 나오기 시작하자마자 말리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불린 찹쌀을 스팀으로 익혔더니 찜통이 없는 데다 찌는 시간이 오래 걸려 여간 번거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휘슬러 냄비에다 약밥 만들던 식으로 찹쌀을 찔려고 매뉴얼을 참고해서 찌다가 몇번을 태웠는 지 모른다.  결국 매뉴얼을 무시하고 나름대로의 요령을 찾았는데 밥하는 얕은 압력솥에다 찹쌀을 넣고 물을 붓되 손으로 자근자근 눌러 찹쌀이 물에 겨우 잠길 정도로 붓고 압력기가 두 눈금 올라오면 불을 끄고 전기 스토브에서 옆으로 옮겨 7분 이상 두었다가 열면 된다.  5분 두었다가 열어보니 익혀지지 않은 찹쌀들이  있었고 물을 좀 더 붓고 다시 압력을 올리려니 바닥은 타고해서 안 익은 찹쌀이 섞인 상태로 식혜를 만든 적도 있었다.  고만큼만 덜 달겠지하는 생각으로...

식혜를 시작할 때 위에다 설탕을 한 숟갈 뿌려주면 더 잘 삭는다고 가르쳐 주시는데 매번 잊어버려 첫번째 외에는 한번도 설탕을 섞지 못했다.  전분을 당분으로 만드는 효소인데 설탕의 역할이 무엇일까? 아직도 궁금하다.

그리고 찹쌀에 엿기름 물을 부으면 물을 흡수해서 불기 때문에 찹쌀 9컵을 넣고 엿기름 물을 꼭대기까지 가득 넣어야 한다. 처음에는 헝근하지만 곧 찹쌀이 불어 올라와 통을 빡빡하게 채울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재료 섞기
이제 시럽이 준비되었으니 모든 재료들을 섞을 차례이다.  굵은 고춧가루는 커피 가는데다 할 수 있는 만큼 곱게 갈고 소금은 프랑스산 grey sea salt(Le Tresor의 Tamise)로 준비했다.  메주 가루보다 고추장에 넣으면 더 맛있다는 청국 가루를 미세스 리가 조달해주셨다.  청국 가루 양은 고추장 1 갤런당 커피잔으로 한 컵 계산해서 3컵 넣었는데 나중에 고춧가루가 불어 뻑뻑해져 엿물을 계속 더 넣는 바람에 이번 고추장에는 두 갤런당 한 컵정도 들어간 셈이다.

간 조절하기
큰솥에다 모두 섞어 두고 다음 날 저어주고 간을 보라고 하신다. 고춧가루도 불어야하고 소금이 녹는데 시간이 걸리니까. 다음 날 보니 뻑뻑해져 있어 묽은 조청을 또 준비해서 식혀 넣고 또 다음 날에도 한번 더 넣고 나니 주걱이 좀 돌아간다.  소금은 매일 더 넣었다.  일주일 되던 때에는 단맛을 못 느낄 정도로 소금 간을 하고 하루를 더 둔 후 마감하기로 했다.  다음 날 맛을 보니 전 날의 고약한 짠 맛이 아주 약간 부드러워지고 단맛이 살짝 느껴졌다.  그만하면 곰팡이가 자리잡지 못하리라.   이렇게 시간을 갖고 찬찬히 맛보며 간을 조절하는 테크닉이 악기의 줄을 조율하는 과정과 비슷한 섬세한 예술이라고 느껴졌다.


저장하기
독과 갤런 병에다 담고 독에는 장독 뚜껑을, 병에는 쇠망을 엎어 바람이 잘 통하도록 하고 빗물이 못들어가게 유리 접시를 거꾸로 올리고 바람에 접시가 날아가지 않도록 양파 망을 씌어 놓았다.  이제 위 표면은 꾸덕꾸덕 마르면서 곰팡이로 부터 보호막을 만들것이고 그 속에서는 햇빛의 온도로 활성화된 청국장 가루의 효소들이 단맛, 짠맛, 매운 맛을 잘 어우러지게 해 줄 것이다. 

내년까지 안녕!!







추가:
엿기름의 양이 찹쌀에 비해 많이 부족하면 식혜가 어떻게 될까? 의 궁금증을 푸는 것이 고추장 마지막 작업이었다.   원리 그대로 효소의 양이 부족하니 당분으로 바꾸어지지 못한 전분이 많이 남아 단맛은 약하고 전분을 푼 듯한 걸쭉함이 함께 하는 식혜가 되었다.  일단 끓이고 졸여 맛을 보니 달달한 풀죽을 먹는 느낌이다.